사적
수원 화성 (水原 華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 411,534㎡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시 대 : 조선 정조 20년(1796)
화성은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이다. 1789년(정조 13) 수원을 팔달산 동쪽 아래로 옮기고, 1794년(정조 18) 축성을 시작해 1796년에 완성했다. 전체 길이는 5.74㎞에 달한다. 4개의 성문을 비롯해 망루의 일종인 공심돈(空心墩), 대포를 둔 포루(砲樓), 요충지에 세운 각루(角樓), 군사지휘소인 장대(將臺) 등을 두루 갖췄다.
화성은 지형을 살려 쌓는 조선의 축성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방어시설을 도입한 성곽이다. 실학자 정약용은 조선과 중국의 축성 방식을 총망라하여 성곽의 규모와 방어시설, 재료를 계획했고, 자재를 쉽게 들어 올리는 거중기와 튼튼한 수레 유형거를 발명하여 공사비용도 줄였다. 축성의 모든 과정은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보고서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건축도면과 축성기계의 그림, 사용한 재료의 치수와 수량까지 수록되어 있어 현재까지도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수리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화성은 동서양의 기술교류를 보여주고 지형을 살린 우수한 군사건축물로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화성은 성곽뿐 아니라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성곽도시이자 계획 신도시라는 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화성에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정조의 뜻과 실학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화성 → 수원 화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개별안내판
평지남성(平地南城)
평지남성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네 구간으로 나눈 서벽 중에 평지로 이루어진 남쪽 성곽이다. 남문인 팔달문을 중심으로 동쪽은 남동적대부터 남수문까지, 서쪽은 남서적대와 남은구까지 모두 7개 시설물이 있다. 팔달문 주변은 지형이 평탄하고 사람의 왕래가 많던 곳이어서 일찍부터 시장이 발달하고 집이 즐비했다. 1970년대 복원 사업 당시 무너진 성벽 대부분을 복원하였지만 도로와 시장이 있는 구간만은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팔달문은 비록 성벽은 없어진 채 도로 한복판에 우뚝 서 있지만 창건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아홉 개의 홍예문으로 만들어진 남수목도 이 구간의 색다른 볼거리로 꼽힌다.
자 료 : 문화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수량/면적 : 1동
지정일 : 2011.03.03
소재지 :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개별안내판
동북각루 東北角樓 (방화수류정) 보물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용두바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이다. 정조는 이를 ‘현릉원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년)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과 창문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자 료 : 문화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경기 수원 화성 및 방화수류정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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