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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문화유산/전라북도

[전북]전주 전주향교

by sajin365 201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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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사적  제379호 
명   칭 : 전주향교 (全州鄕校)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수   량 : 면적 10,357.4㎡
지정일 : 1992.12.23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외 
시   대 : 고려시대
소유자 : 전라북도 향교재단 

향교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당시에는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 근처에 있었으나,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하여 전주성 서쪽 황화대 아래로 옮겼다 한다. 지금 위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관찰사 장만이 옮긴 것이다.

현재 이 향교에는 여러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7호)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이 고쳐 세웠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이후 융희 원년(1907)에 군수 이중익이 다시 고쳤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에 군수 권직상이 고쳤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다.

우리의 옛 교육시설을 둘러 볼 수 있는 이곳은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다. 그러나 봄·가을에 공자께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보름에는 향을 피우고 있다.


※(전주향교일원 → 전주향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자료 : 문화재청

 

종   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 
명   칭 : 전주향교대성전 (全州鄕校大成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수   량 : 면적 1동
지정일 : 1971.12.02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번지  
소유자 : 향교재단
관리자 : 전주향교전교 
문   의 : 전라북도 전주시 전통문화시설과 063-281-2168

 

향교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고,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전주향교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시대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며, 원래 지금의 경기전이 있던 자리에 있었지만 조선 태종 10년(1410) 화산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뒤 선조 36년(1603)에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힘을 합쳐 현 위치로 옮겼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은 이때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그중 대성전은 선조 때 지은 건물로 순종 융희 1년(1907)에 당시 군수 이중익이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에는 서울 성균관과 같이 공자를 중심으로 4성인과 10철학자, 송나라의 6현인을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 모두 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갑오개혁(1894) 이후로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구전에 의하면 향교가 있던 자리는 경기전 근처이며, 경기전을 세우게 되자 주위가 번잡하다고하여 태종 10년(1410년)에 화산동으로 이건하였다. 그 뒤 선조때 순찰사 장만(張晩)과 유림들이 합심하여 현위치로 옮겼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이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향교의 현존 건물의 배치형태를 보면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무(東·西무)가 있고, 정면에 일월문(日月門) 그 앞에 만화루(萬化樓)가 있으며, 대성전 뒷담을 사이로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서쪽으로 장서각(藏書閣), 계성사(啓聖祠), 양사재(養士齋)와 사마재(司馬齋) 그리고 주위에 교직사(校直舍)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이곳 배향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이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主壁)으로 사성(四聖)과 십철(十哲), 송대(宋代) 육현(六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서 양무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학자 7인과 우리나라의 18현 등 총 25인을 배향하고 있다.

조선조때 관학의 성격을 띠고 있을 당시, 이 향교는 도호부(都護府)의 관아가 있던 관계로 학생수가 액내생(額內生) 90명, 액외생(額外生) 90명으로 총 180명에 정7품의 훈도 1명이 배속되어 학생들에게 사서 오경 등을 가르쳤다.

이곳에는 특히 계성사가 있어서, 여기에 5성(五聖)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계성사는 영조 17년(1741년)에 판관 송달보(宋達輔)가 창건하고, 정랑 이기경(李基敬)이 상량문을 썼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년)에 부윤 심택(沈澤)과 판관 한진기(韓震琦)가 중건하였는데, 이기발(李起渤)이 중건기를 남겼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년)에 군수 권직상(權直相)이 중수하였다. 또한 대성전은 융희 원년(1907년)에 당시 군수였던 이중익(李重翼)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건물로서 정면 3칸, 후면 2칸이다. 정면 3칸에는 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고, 지붕은 맞배 지붕이며, 양 합각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자 료 : 문화재청

 

 

 

 

 

 

 

 

 

사적 제379호

전주향교

문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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