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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문화유산/충청북도

[충북]충주 청룡사지

by sajin365 2015.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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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국보  제197호 

명   칭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79.05.22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탑으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탑은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탑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보물 제656호 

명   칭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석등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79.05.22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청룡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고, 현재 절의 옛모습을 짐작해 볼 방법이 없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서 있을 뿐이며, 현재의 청룡사는 옛터의 북쪽에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사자의 등에 얹어진 가운데받침은 기둥모양으로 4각의 낮은 돌을 두었다. 화사석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을 돌출되게 조각해 놓았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모서리선이 두터워 고려시대의 지붕돌 양식을 잘 보여준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보물 제658호  

명   칭 :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79.05.22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希達)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 

명   칭 : 충주 청룡사 위전비 (忠州 靑龍寺 位田碑)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 1기/7,926

지정일 : 2004.09.27

소재지 :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 32 소태면 오량리 산32-2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   의 :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체육과 043-850-6631~4


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가첨석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문에는 사찰의 경영을 위하여 신도들이 출원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음기에 시주한 불자들의 이름과 출원품의 양이 명시되어 있고 이 비를 세운 대표자는 통정대부 崇徽로 되어 있다. 사원경제 분야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크기 : 비신높이 140cm, 너비 69cm, 두께 23cm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4호 

명   칭 :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 (忠州 靑龍寺址 石鍾形僧塔)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2006.03.0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바깥오량길 28-2 (소태면)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관리자 :  

문   의 :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체육과 043-850-6631~4


정사각형의 지대석위에 각형 괴임대가 새겨진 하댓거을 놓고 호감암의 석종형탑신을 올렸다.

탑신 윗부분은 복발모양으로 조각하여 정상부에 3단의 돌출부부을 조식하였고 탑신부 가운데에 부도의 주인공을 새겨놓았는데 '寂雲堂舍利塔'으로 보여진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충북 충주 청룡사지

2015.04.05

문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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