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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문화유산/전라남도

전남 구례 화엄사 석등외

by sajin365 2017.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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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국보 제12호 

명   칭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석등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 (지번)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   대 : 통일신라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국보 제67호 

명   칭 : 구례 화엄사 각황전 (求禮 華嚴寺 覺皇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수량/면적 : 1동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 (지번)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종   목 : 보물 제300호 

명   칭 :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求禮 華嚴寺 圓通殿 앞 獅子塔)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 (지번)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   대 : 통일신라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로,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을 이루어 왔다. 신라 후기에는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때에는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어 일주문 밖에 큰 창고를 짓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자료바로가기 : 문화재청

 

 

 

전남 구례 화엄사

2016.03.13

문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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