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여행 추천지, 해미읍성 산책기
충청남도 서산에 위치한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던 성곽으,로, 지금은 잘 보존된 역사 유적지이자 산책하기 좋은 여행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해미읍성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넓게 펼쳐진 성곽길로, 성벽 위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탁 트인 풍경과 함께 조선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성 안쪽에는 옛 관아 건물과 전통 가옥이 재현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천주교 박해에대한 유적도 있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 교육 공간으로도 의미가 크다.
어디를 찍어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 성문, 성벽, 잔디광장 등은 특히 인기 있는 포토 스팟이며. 전통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역사와 자연, 여유로운 산책을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해미읍성으로~

















사적 서산 해미읍성 (瑞山 海美邑城)
Haemieupseong Walled Town, Seosan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 196,381㎡
지정(등록)일 : 1963.01.21
소재지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번지
시대 : 조선 성종 22년(1491)
국가유산 설명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졌으며,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해미읍성 → 서산 해미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안내판 설명
서산 해미읍성 (瑞山 海美邑城)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 충청도의 전군(全軍)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이다. 이 성은 고려 말부터 침입이 잦았던 왜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하여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節制使營)을 해미로 옮기면서 1417년(태종 17)부터 쌓기 시작해 1421년(세종 3)에 완공되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鎭南門)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든 반원형의 홍예문(虹霓門)이다.
성 밖은 해자(垓字)*로 둘렀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해자의 일부를 복원했다. 기록에는 성벽 위에 여장(女墻)**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 둘레는 1500m이며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흔히 '탱자 성'이라는 뜻으로 '지성(枳城)'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652년(효종 3)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지만,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충청도 5군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243년간 내포 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하였다. 영장(營將)은 도적이나 반란 세력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의 임무도 맡았으므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에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東軒)을 비롯해 관아(官衙)와 객사(客舍)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9년(선조 12)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고,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해미에서 유배 생활하며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1910년 읍성 철거령에 따라 시설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성안으로 민가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정비에 들어갔고, 1997년부터는 발굴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멍이.
** 여장(女墻) :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 겸영장(兼營將) :지방 수령이 각 지방의 군사를 통솔하는 일을 겸하여 맡아보던 무관 벼슬.
등록된 자료는 2019~2023년 및 2025년에 진행된 안내판 개선 사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자료 : 국가유산포털
서산 해미읍성
2025.10.04 촬영
문현준의사진속으로
#해미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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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5 - [한국의문화유산/충청남도] - [충남]서산 해미읍성
[충남]서산 해미읍성
종 목 : 사적 제116호명 칭 : 서산 해미읍성 (瑞山 海美邑城)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면 적 : 194,102.24㎡지정일 : 1963.01.21소재지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시 대 : 조선시대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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